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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뢰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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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올레 뢰머는 1644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천문학자이자, 코펜하겐 시장 및 경찰서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1676년 목성 위성 이오의 식 현상 관측을 통해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으며, 덴마크의 도량형 체계 확립, 그레고리력 도입, 뢰머 온도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다. 또한 코펜하겐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도시 기반 시설을 정비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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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뢰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야코프 코닝의 초상화, 1700년경
올레 뢰메르, 야코프 코닝의 초상화 (1700년경)
이름올레 크리스텐센 뢰메르
로마자 표기Ole Christensen Rømer
출생1644년 9월 25일
출생지덴마크-노르웨이 오르후스
사망1710년 9월 19일
사망지덴마크-노르웨이 코펜하겐
국적덴마크
학문 분야
분야천문학
모교코펜하겐 대학교
주요 업적뢰메르의 광속 측정
뢰메르 척도
사이클로이드 기어
광행 시간 보정
수평고도 좌표계
자오선환
소속 기관
직장코펜하겐 대학교

2. 생애

코펜하겐의 원형탑(Rundetårn). 뢰머는 이곳의 천문대에서 활동했다.


올레 뢰머는 1644년 9월 25일 덴마크 윌란반도오르후스에서 상인이자 선장인 크리스텐 페데르센(Christen Pedersen)과 안나 올루프스다테르 스토름(Anna Olufsdatter Storm) 사이에서 태어났다.[2][59] 그의 아버지는 동명이인과 구별하기 위해 1642년부터 덴마크 뢰뫼섬 출신임을 나타내는 '뢰머'라는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3][60] 뢰머는 오르후스 대성당 학교(Aarhus Katedralskole)를 졸업하고[4][5][61][62] 1662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여 라스무스 바르톨린의 지도를 받으며 수학천문학을 공부했다.[6][63]

1671년 장 피카르와의 만남을 계기로 1672년 프랑스 파리시의 왕립 천문대로 초청받아 활동하며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그는 루이 14세의 아들인 도팽의 가정교사를 맡았고, 베르사유 궁전의 분수 건설에도 참여했다. 파리 천문대에서는 목성위성 이오 현상을 관측하여 1676년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밝히고 그 값을 계산하여 발표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679년에는 영국을 방문하여 아이작 뉴턴, 존 플램스티드, 에드먼드 핼리 등 당대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교류했다.

1681년 덴마크로 돌아온 뢰머는 코펜하겐 대학교천문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스승 라스무스 바르톨린의 딸인 안네 마리 바르톨린(Anne Marie Bartholin)과 결혼했다.[64] 그는 원형탑(Rundetårn)의 대학 천문대와 자택에 설치한 천문대에서 직접 개선한 관측 기기를 사용하여 연구를 계속했다.[63] 왕립 수학자로서 덴마크 최초의 통일된 도량형 체계를 1683년 도입했으며,[64][65] 1700년에는 덴마크-노르웨이그레고리력 도입을 성공시켰다.[11][68] 또한 독자적인 온도 눈금인 뢰머 눈금을 개발했는데, 이는 훗날 파렌하이트가 화씨 온도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13][14][15][70][71][72] 그는 여러 천문 관측 기기를 고안했으며 1704년에는 개인 천문대인 투스쿨라눔(Tusculanum)을 설립하기도 했으나,[63] 안타깝게도 그의 많은 관측 기록은 1728년 코펜하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63]

과학 연구 외에도 뢰머는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705년 코펜하겐시장 겸 경찰 책임자로 임명되었고,[17][74] 1707년에는 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는 코펜하겐 최초의 가로등 설치, 상수도 및 하수구 정비, 소방서 장비 개선, 도로 포장 등 도시 기반 시설 확충에 크게 기여했으며,[20][21][22][77][78][79] 빈곤층과 실업자 문제 해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19][76] 또한 덴마크 여러 도시에 항해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발전에도 기여했다.[16][73]

뢰머는 총 두 번 결혼했으며, 두 부인 모두 바르톨린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1710년 코펜하겐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80] 유해는 코펜하겐 대성당에 안장되었다.[23]

2. 1. 코펜하겐 대학교와 라스무스 바르톨린

뢰머는 1662년 오르후스 대성당 학교(Aarhus Katedralskole)를 졸업하고[4][5][61][62]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에서 그의 멘토는 라스무스 바르톨린이었다. 바르톨린은 1668년 빙정석(방해석의 투명한 형태)에 의한 빛의 복굴절 현상을 발견한 인물로, 뢰머는 그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6][63] 당시 바르톨린은 티코 브라헤의 천문 관측 자료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의 지시에 따라 뢰머는 브라헤의 방대한 관측 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6][63] 이 과정에서 뢰머는 브라헤의 자료를 활용하여 수학천문학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6][63]

2. 2. 프랑스에서의 활동

1671년 장 피카르가 티코 브라헤의 연구 자료 조사를 위해 코펜하겐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뢰머가 안내역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1672년 파리시의 왕립 천문대로 초청받아 프랑스로 갔다. 이와 동시에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프랑스 정부에 고용된 뢰머는 루이 14세에 의해 왕세자인 도팽의 가정교사로 임명되었다. 또한 베르사유 궁전의 웅장한 분수 건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목성위성 이오. 뢰머는 이오의 공전 주기를 관측하여 빛의 속도를 계산했다.


파리 왕립 천문대에서는 1675년부터 목성위성 이오가 목성에 가려지는 현상인 을 관측했다. 그는 이 관측을 통해 지구목성과 가까워질 때는 식이 예상보다 빨리 나타나고, 멀어질 때는 늦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뢰머는 이것이 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결론짓고, 이를 바탕으로 1676년 빛의 속도를 계산하여 발표하였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빛이 지구 공전 궤도의 지름을 가로지르는 데 약 22분이 걸린다고 추정했다.

뢰머는 1681년 덴마크로 돌아갈 때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2. 3. 덴마크 귀국과 과학적 업적

1681년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와 코펜하겐 대학교천문학 교수로 임명되었다.[64] 그는 원형탑(Rundetårn)에 있는 대학교 천문대와 자신의 집에서 직접 제작하고 개선한 기기를 사용하여 관측 활동을 이어갔다.[63] 같은 해 라스무스 바르톨린의 딸인 안네 마리 바르톨린(Anne Marie Bartholin)과 결혼했다.[64] 안타깝게도 그의 관측 자료 대부분은 1728년 코펜하겐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나,[63] 그의 조수였던 페데르 호레보(Peder Horrebow)가 뢰머의 관측 내용을 충실히 기록하여 일부 내용이 전해진다.[63]

작업 중인 올레 뢰머


왕립 수학자로서 뢰머는 덴마크의 도량형 통일에 기여했다. 1683년 5월 1일, 그는 덴마크 최초의 국가적인 도량형 시스템을 도입했다.[64][65] 처음에는 라인 강 유역의 기준을 따랐으나, 1698년에는 더 정확한 국가 표준이 채택되었다.[66] 이후 제작된 길이와 부피의 표준은 매우 정밀했다. 뢰머는 진자의 주기를 이용하여 천문학적 상수에 기반한 도량형 정의를 목표로 했으나, 이는 그의 사후에 실현되었다.[67] 또한 그는 24,000 덴마크 피트(약 7532m)를 1 덴마크 마일로 정의하기도 했다.[67]

1700년, 뢰머는 덴마크-노르웨이의 국왕을 설득하여 그레고리력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티코 브라헤가 약 100년 전에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일이었다.[68]

뢰머는 최초의 실용적인 온도계 중 하나를 개발하기도 했다.[69] 1708년 파렌하이트가 뢰머를 방문하여 그의 온도 측정 방식을 개선했는데, 이는 오늘날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는 화씨 온도 체계의 기초가 되었다.[70][71][72]

천문학자로서 그는 자오환[89][90][91], 경위의[92][93] 등 정밀한 천체 관측을 위한 여러 기구를 직접 고안하고 제작했다.[94][95] 1704년에는 코펜하겐 근교에 투스쿨라눔(Tusculanum) 천문대를 설립하여 관측을 이어갔으나,[63] 이곳의 자료 역시 1728년 코펜하겐 대화재 때 소실되었다.[63]

2. 4. 사회 활동

1705년 코펜하겐시장 겸 경찰의 두 번째 책임자로 임명되어 1710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했고,[17][74] 1707년에는 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코펜하겐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뢰머는 코펜하겐 최초의 가로등(기름 램프)을 설치했으며,[18][75] 도시 기반 시설 정비에도 힘썼다. 새로운 주택 건축 규칙을 만들고 도시의 상수도 및 하수구 시설을 정비했으며, 소방서에 더 좋고 새로운 장비를 갖추도록 했다. 또한 도로광장의 포장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20][21][22][77][78][79]

사회 문제 해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경찰 책임자로서 처음 한 일 중 하나는, 사기가 매우 낮다고 판단하여 경찰 전체를 해고하고 재정비한 것이었다. 또한 도시의 거지, 가난한 사람들, 실직자, 매춘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19][76]

더불어 덴마크 여러 도시에 항해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분야에도 기여했다.[16][73]

3. 빛의 속도 측정

경도 측정의 정확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올레 뢰머는 목성의 가장 안쪽 갈릴레이 위성이오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했다. 1671년부터 파리 천문대에서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 장 피카르 등과 함께 연구하며, 뢰머는 지구와 목성 사이의 거리가 변함에 따라 이오의 식이 관측되는 시각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지구가 목성에 가까워질 때는 이오의 식이 예측보다 일찍 나타나고, 멀어질 때는 늦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뢰머의 광속 측정에 대한 1676년 기사의 삽화. 뢰머는 지구가 목성에 접근할 때(F에서 G)와 지구가 목성에서 멀어질 때(L에서 K) 이오의 궤도 주기를 비교했다.


뢰머는 이 현상이 빛의 속도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했다. 지구와 목성 사이의 거리가 달라지면 빛이 그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달라지므로, 관측되는 식의 시각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1676년, 뢰머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관측 결과와 추론을 발표하며, 빛이 지구 공전 궤도의 지름을 가로지르는 데 약 22분이 걸린다고 추정했다.[28][84] 이 발표 내용은 같은 해 12월 ''Journal des sçavans''에 요약되어 실렸다.[25]

뢰머 자신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광속 값을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구는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정량적 증거로 평가받는다. 이 발견은 이후 크리스티안 호이겐스 등이 광속을 최초로 계산하는 기초를 제공했으며,[30][86] 1727년 제임스 브래들리광행차 발견으로 확고히 입증되었다. 뢰머의 연구는 파리 천문대에 기념 명판이 세워질 정도로 중요한 과학사적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3. 1. 배경

경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지도 제작과 항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스페인펠리페 3세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경도를 알아내는 방법을 찾는 이에게 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이에 갈릴레오목성위성들이 목성 뒤로 숨는 현상(식, 食)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경도를 계산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는 목성계를 일종의 우주 시계로 활용하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밀한 시계가 없었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천체를 관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 방법은 18세기에 정확한 기계식 시계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갈릴레오가 스페인 왕실에 이 방법을 제안했을 때도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충분히 활용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는 갈릴레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경도 측정에 활용했다. 그는 갈릴레이 위성의 식을 이용하여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특정 위치에서 식이 언제 관측될지 예측하는 표를 발표했다. 이후 카시니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요청으로 파리 천문대 창설에 참여하게 되었고, 남은 생애를 그곳에서 연구에 헌신했다.

카시니가 파리에서 한 첫 번째 일 중 하나는 프랑스인 Jean Picard|장 피카르프랑스어를 우라니보르에 있는 티코 브라헤의 옛 실험실 터로 보낸 것이다. 피카르는 카시니가 파리에서 목성 위성의 식이 일어난 시간을 기록하는 동안, 우라니보르에서 목성의 식을 관찰하고 그 시간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다. 피카르는 식이 끝나는 시간을 우라니보르에서 오후 9시 43분 54초라고 기록했고, 카시니는 파리에서 오후 9시 1분 44초라고 기록했다. 두 도시에서 식이 끝난 시간의 차이인 42분 10초를 이용하여 파리와 우라니보르 사이의 경도가 10° 32’ 30’’이라고 계산했다. 피카르는 이 관측을 진행할 때 덴마크인 올레 뢰머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펜하겐에서 연구를 마친 뢰머는 1671년 피카르와 합류하여 수개월에 걸쳐 코펜하겐 근처 벤 섬의 우라니보르 천문대 터에서 목성의 위성 이오의 식 현상 약 140개를 관측했다. 동시에 파리에서는 카시니가 동일한 식 현상을 관측했다. 식 현상의 시간을 비교하여 파리와 우라니보르의 경도 차이를 계산했다.

3. 2. 이오의 식 관측

뢰머가 설명한 지구의 위치(F에서 G로 이동하며 목성에 접근, L에서 K로 이동하며 멀어짐)에 따른 이오의 식 관측 시간 변화 개념도.


경도 측정은 지도 제작법과 항해에서 중요한 실질적인 문제였다. 스페인펠리페 3세는 육지에서 보이지 않는 배의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에 대한 상을 내걸었고, 갈릴레오목성의 위성 이오의 식(食) 현상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는 목성계를 일종의 우주 시계로 활용하려는 시도였다.[24][81] 이 방법은 초기에는 배 위에서의 관측 어려움과 시간표의 부정확성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졌으나, 육지에서는 개선을 통해 활용될 수 있었다.

코펜하겐에서 연구를 마친 뢰머는 1671년 장 피카르와 합류하여, 티코 브라헤의 우라니보르 천문대가 있던 벤 섬에서 수개월에 걸쳐 목성의 위성 이오의 식 현상을 약 140회 관측했다. 같은 시기 파리에서는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동일한 식 현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두 지역에서 관측된 식 시간을 비교함으로써 파리와 우라니보르 사이의 경도 차이를 계산할 수 있었다.

1672년 뢰머는 파리로 가서 카시니의 조수로서 목성의 위성에 대한 관측을 계속했다. 카시니는 이미 1666년부터 1668년 사이의 관측에서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점과 관련된 측정값의 불일치를 발견한 바 있었다.[24][81] 뢰머는 자신의 관측 결과를 카시니의 관측에 더하여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구목성에 가까워질수록 이오의 식이 예정보다 일찍 나타나고, 지구가 목성에서 멀어질수록 식이 늦게 나타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즉, 식 현상 관측 간격이 지구와 목성의 상대적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카시니는 1676년 8월 22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관련 내용을 발표하며 빛이 지구 궤도 반지름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약 10~11분이 소요될 수 있음을 시사했으나[24][81], 이후 이 해석을 더 발전시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뢰머는 이 현상을 광속이 유한하다는 증거로 확신하고, 1671년부터 1677년까지 자신과 피카르가 수행한 관측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를 입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26][82]

이오목성 주위를 약 42.5시간마다 공전하며, 지구에서 볼 때 목성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현상(Immersion)과 그림자에서 나오는 현상(Emergence)을 통해 식이 관측된다. 뢰머는 이나 위치를 피해 지구가 목성에 접근하거나(F에서 G까지) 멀어지는 시기(L에서 K까지)에 이러한 식 현상을 집중적으로 관측했다. 그의 관측 기록 대부분은 1728년 코펜하겐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668년부터 1678년까지의 이오 식 관측 60회 기록이 담긴 원고 하나는 남아 전해진다. 뢰머는 1677년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1671년부터 1673년까지의 관측 자료가 자신의 계산의 기초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3. 3. 뢰머의 추론

1676년 8월 22일,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이오의 식(食) 관측 결과에 불일치가 있으며, 이는 "빛이 위성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빛이 지구 궤도 반지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약 10~11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24][81]

카시니는 이 추론을 더 발전시키지 않았고, 뢰머가 이 아이디어를 채택하여 장 피카르와 자신이 1671년부터 1677년까지 수행한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26][82] 뢰머는 목성의 위성 이오의 식 주기를 관찰하면서, 지구가 목성에 가까워질 때는 관측되는 식 주기가 짧아지고, 지구가 목성에서 멀어질 때는 길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지구와 목성 사이의 거리가 변함에 따라 빛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뢰머는 먼저 빛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가정했을 때 나타날 현상을 분석했다. 위 그림에서 지구가 목성에서 멀어지는 위치(L에서 K)에 있을 때, 이오의 공전 주기(약 42.5시간) 동안 지구는 목성으로부터 멀어지므로 빛이 도달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반대로 지구가 목성 쪽으로 다가가는 위치(G에서 F)에서는 빛이 도달하는 시간이 덜 걸린다. 뢰머는 이 시간 차이가 각각 약 3.5분씩 발생하여, 두 위치에서 측정한 이오의 공전 주기가 약 7분 차이 나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실제 관측에서는 이러한 즉각적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뢰머는 여러 번의 공전을 관측하면 이 작은 시간 차이가 누적되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누적 효과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1672년 봄 관측에서 3월 초에 측정한 이오의 공전 주기와 4월 말에 측정한 주기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4월 29일의 식 현상이 예측보다 약 15분 늦게 관측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관측과 분석을 바탕으로 뢰머는 1676년 11월 22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 내용은 아카데미 공식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1676년 12월 7일자 ''Journal des sçavans''에 익명의 기자에 의해 Démonstration touchant le mouvement de la lumière trouvé par M. Roemer de l'Académie des sciences프랑스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으로 요약되어 실렸다.[25] 이 기사는 나중에 런던 왕립 학회 저널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에도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뢰머는 8년간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여, 빛의 지연 시간(Δt)이 지구가 목성에 대해 이루는 각도(α)에 비례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관계를 Δt = 22 × (α / 180°) 분으로 계산했다. 여기서 α가 180°일 때, 즉 지구가 태양을 사이에 두고 목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그림의 H에서 E까지의 거리, 지구 공전 궤도의 지름에 해당) 빛의 지연 시간은 최대 22분이 된다. 이는 빛이 지구 궤도의 지름을 가로지르는 데 22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28][84] 뢰머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광속 값을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데이터는 다른 과학자들이 광속을 추정하는 기초가 되었다.

뢰머가 광속 측정을 위해 사용했던 1676년 이오 식 관측 기록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676년 뢰머가 기록한 이오의 식 현상
시간은 정규화되어 있다 (정오가 아닌 자정 이후 시간). 짝수 행의 값은 원본 데이터에서 계산된 것이다.
시간Tide궤도평균 (시간)
5월122:49:42Ccolspan="2" |
2,837,189s1841.48
6월1322:56:11Ccolspan="2" |
4,748,019s3142.54
8월721:49:50Dcolspan="2" |
611,765s442.48
8월1423:45:55Dcolspan="2" |
764,718s542.48
8월2320:11:13Dcolspan="2" |
6,729,872s4442.49
11월917:35:45Dcolspan="2" |



뢰머와 서신을 교환하며 그의 데이터를 접한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이를 바탕으로 광속을 약 212,000 km/s로 계산했다.[30][86] 하지만 뢰머의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주장은 즉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727년 제임스 브래들리가 빛의 수차 현상을 발견하고 설명하면서 비로소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1809년 장 바티스트 조제프 들랑브르는 더 정확해진 이오 관측 데이터를 이용해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8분 12초가 걸린다고 계산했으며, 이는 현대 값인 8분 19초와 광속 약 300,000 km/s에 근접한 결과이다.

뢰머가 연구를 수행했던 파리 천문대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지구상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보편적인 물리 상수(광속) 측정 시도로 평가받는다.

3. 4. 빛의 속도 계산

경도 측정은 지도 제작법과 항해에서 중요한 실제 문제였다. 스페인펠리페 3세는 육지에서 보이지 않는 배의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에 상금을 걸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목성의 위성 이오의 식 현상을 관측하여 시간을 알아내고 이를 통해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는 목성계를 일종의 우주 시계로 활용하는 방식이었으나, 갈릴레오가 만든 시간표의 부정확성과 배 위에서 식 현상을 관측하는 어려움 때문에 당시에는 실용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이후 개선되어 육지에서는 활용될 수 있었다.

코펜하겐에서 연구를 마친 뢰머는 1671년 장 피카르와 함께 티코 브라헤의 우라니보르 천문대가 있던 벤 섬에서 몇 달간 이오의 식 현상을 약 140회 관측했다. 같은 시기 파리에서는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동일한 식 현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두 지역에서 관측된 식 현상 시간을 비교하여 파리와 우라니보르 사이의 경도 차이를 계산할 수 있었다.

카시니는 1666년부터 1668년까지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면서, 측정값 사이에 불일치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이 빛이 유한한 속도를 가지기 때문일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다. 1672년 뢰머는 파리로 가서 카시니의 조수가 되어 목성 위성 관측을 계속했다. 자신의 관측 결과를 카시니의 관측 결과에 더하여 분석한 뢰머는, 지구가 목성에 가까워질수록 이오의 식 현상 간격이 짧아지고, 지구가 목성에서 멀어질수록 길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카시니는 1676년 8월 22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 이 두 번째 불일치는 빛이 위성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빛은 지구 궤도의 반경과 같은 거리를 [가로지르는 데] 약 10분에서 11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24]

하지만 카시니는 이 해석을 더 발전시키지 않고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뢰머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1671년부터 1677년 사이에 자신과 피카르가 수행한 관측 자료들을 바탕으로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 뢰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발표했고, 이 내용은 곧 익명의 기자에 의해 짧은 논문 Démonstration touchant le mouvement de la lumière trouvé par M. Roemer de l'Académie des sciences프랑스어로 요약되어 1676년 12월 7일자 ''Journal des sçavans''에 실렸다.[25] 그러나 이 기사는 뢰머의 추론 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는 기자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뢰머 자신은 연구 결과를 정식 논문으로 출판하지 않았다.[26]

뢰머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삽화에서 지구가 점 L에 있을 때 이오가 목성의 그림자에서 나타나는(점 D) 시각을 관측한다. 이오가 42.5시간 주기로 여러 번 공전한 후 지구가 점 K에 도달했을 때 다시 이오의 식 현상을 관측하면, 예상 시간보다 지연되어 관측된다. 뢰머는 이 지연 시간이 빛이 L에서 K까지의 추가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이 시간을 약 3분 30초로 계산했다. 그는 관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이오가 목성 뒤로 완전히 숨는 엄폐 현상 대신, 목성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몰입'(immersion, 점 C) 시점을 주로 관측했다. 뢰머는 8년간의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지구가 목성에 대해 어떤 각도(α)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빛의 지연 시간(Δt)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 관계를 Δt ≈ 22 × (α / 180°) 분으로 계산했다. 여기서 각도 α가 180°일 때, 즉 지구가 태양을 기준으로 목성의 정반대편(충, opposition) 위치 H에서 합(conjunction) 위치 E 근처까지 이동했을 때, 총 지연 시간은 22분이 된다. 이는 빛이 지구 궤도의 지름(H에서 E까지의 거리)을 가로지르는 데 약 22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28]

뢰머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빛의 속도 값을 직접 계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관측 데이터와 추론은 다른 과학자들이 빛의 속도를 계산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뢰머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은 후, 빛이 1초에 지구 지름의 약 16과 3분의 2배 거리를 이동한다고 추론했다.[30] 이를 현대적인 단위로 환산하면 약 212,000 km/s에 해당한다. 이는 현재 알려진 빛의 속도인 약 299,792.458 km/s와 비교하면 상당한 오차가 있지만,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빛의 속도가 유한하며 그 값을 최초로 정량적으로 추정했다는 점에서 큰 과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뢰머의 주장은 즉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727년 제임스 브래들리광행차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빛의 유한한 속도로 설명하면서 비로소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1809년, 천문학자 장 바티스트 조제프 들랑브르는 100년 이상 축적된 더 정확한 이오 관측 자료를 이용하여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8분 12초로 계산했다. 당시 알려진 천문 단위(태양-지구 평균 거리) 값을 사용하면 이는 빛의 속도가 약 300,000 km/s를 약간 넘는 값임을 시사한다. 현대의 가장 정확한 측정값은 태양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8분 19초가 걸리며, 이에 해당하는 빛의 속도는 299,792.458 km/s이다.

뢰머가 중요한 관측을 수행했던 파리 천문대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명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는 지구상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보편 상수(빛의 속도) 측정 시도를 기념하고 있다.

4. 뢰머와 관련된 사람들


  • '''라스무스 바르톨린''': 뢰머가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공부할 당시 그의 멘토이자 이후 장인이 되었다. 바르톨린은 빛의 복굴절 현상을 발견한 인물로, 뢰머에게 티코 브라헤의 천문 관측 기록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을 맡겼다.[6][63]
  • '''장 피카르''' (Jean Picard|장 피카르fra): 프랑스의 천문학자로, 티코 브라헤의 옛 연구 장소를 조사하기 위해 코펜하겐을 방문했을 때 뢰머를 만났다. 피카르는 뢰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1672년 그를 파리 천문대로 초청하는 계기를 마련했다.[2][63] 이후 뢰머는 피카르와 함께 벤 섬의 우라니보르그 천문대 터에서 목성의 위성인 이오의 식(蝕) 현상을 여러 차례 관측했으며, 이 관측 결과는 파리와의 경도 차이를 계산하는 데 활용되었다.[24]
  •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 이탈리아 출신의 천문학자로 파리 천문대의 책임자였다. 그는 목성의 위성들의 식 현상을 이용하여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이를 예측하는 표를 발표했다.[24] 카시니는 장 피카르를 우라니보르그로 파견하여 이오의 식을 관측하도록 했고, 뢰머는 파리에서 카시니의 조수로 일하며 목성 위성 관측을 이어갔다. 카시니 역시 관측 과정에서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증거를 포착했으나, 이 생각을 더 발전시키지는 않았다.[24][81]
  •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유한한 속도로 전파된다고 주장한 네덜란드의 과학자이다. 그는 뢰머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그의 관측 자료를 얻었고, 이를 분석하여 빛이 초당 약 212000km를 이동한다고 계산했다. 이는 빛의 속도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계산값으로 평가받는다.[30][86]
  • '''페데르 호레보우''': 뢰머의 조수로 1703년부터 1707년까지 그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연구를 도왔다. 1728년 코펜하겐 대화재로 뢰머가 직접 남긴 관측 기록과 사용했던 기기들이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호레보우가 뢰머의 관측 방법과 내용, 기기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묘사해 둔 덕분에 뢰머의 중요한 업적들이 후대에 알려질 수 있었다.[64]

5. 뢰머 온도

올레 뢰머는 최초의 실용적인 온도계 중 하나와 함께 자신만의 온도 눈금을 개발했다.[12] 이는 그가 다리가 부러져 회복하는 동안 이루어졌다.[12]

뢰머 눈금은 초기에 1 기압(atm)에서 소금물(염수, 특히 리터당 50g 이상)의 어는점을 0Rø로, 물의 끓는점을 60Rø로 정의했다. 이후 뢰머는 순수한 물의 어는점이 약 7.5Rø임을 발견하고, 눈금을 재조정하여 순수한 물의 어는점을 7.5Rø, 끓는점을 60Rø로 설정했다. 이 변경으로 인해 순수한 물을 기준으로 온도를 측정하는 것이 더 용이해졌다. 이 뢰머 온도 눈금의 간격은 섭씨나 화씨 눈금 간격의 40/21 (약 1.9)배에 해당한다. 뢰머 온도의 기호는 보통 °Rø로 표기하는데, 이는 란씨 온도(°R)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다.

1708년,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는 뢰머를 방문하여 그의 온도 눈금에 대해 알게 되었다.[13][14][15] 파렌하이트는 뢰머의 연구에 영감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씨 온도 눈금을 고안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래는 다른 온도 단위와 뢰머 온도를 환산하는 표이다.

온도 단위 환산표
온도 이름단위뢰머 단위로뢰머 단위에서
켈빈K[°Rø] = ([K] − 273.15) × 21⁄40 + 7.5[K] = ([°Rø] − 7.5) × 40⁄21 + 273.15
섭씨°C[°Rø] = [°C] × 21⁄40 + 7.5[°C] = ([°Rø] − 7.5) × 40⁄21
화씨°F[°Rø] = ([°F] − 32) × 7⁄24 + 7.5[°F] = ([°Rø] − 7.5) × 24⁄7 + 32
란씨°Ra[°Rø] = ([°Ra] − 491.67) × 7⁄24 + 7.5[°R] = ([°Rø] − 7.5) × 24⁄7 + 491.67


6. 올레 뢰머 박물관

올레 뢰머 박물관은 덴마크 호에-토스트루프 자치구에 위치한다.[41] 이곳은 브리슬뢰스마글레에 있던 뢰머의 천문대 Observatorium Tusculanum|옵세르바토리움 투스쿨라눔da의 발굴 현장이다.[42][43][44] 이 천문대는 1704년에 문을 열어 1716년경까지 운영되었으며, 이후 남은 기구들은 코펜하겐의 원탁탑으로 옮겨졌다.[45] 박물관에는 고대 및 현대 천문 기구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46] 박물관은 1979년에 개관했으며, 2002년부터는 같은 장소에 있는 크로페달 박물관의 일부로 운영되고 있다.[47][48][49]

7. 기타

덴마크 자연과학 연구 위원회는 뛰어난 연구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Ole Rømer-medaljen|올레 뢰머 메달dan을 수여한다.[40]

덴마크 내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뢰머를 기념하고 있다. 그의 초상은 덴마크 지폐에 사용되었으며,[50] Ole Rømers Høj|올레 뢰머스 회이dan(올레 뢰머의 언덕)라는 지명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51] 오르후스(Ole Rømers Gade)와 코펜하겐( Rømersgade|뢰머스가데dan)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52][53] 오르후스 대학교의 천문대는 그의 업적을 기려 올레 뢰머 천문대 (Ole Rømer Observatoriet|올레 뢰머 옵세르바토리엣dan)로 명명되었다. 또한, 별의 특성을 측정하기 위한 덴마크의 위성 프로젝트는 Rømer-satellitten|뢰머 위성dan으로 명명되었으나, 이 프로젝트는 2002년에 무산되었다.[54][55]

에 있는 뢰머 분화구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56]

대중문화에서도 뢰머의 이름이나 업적이 언급된다. 1960년대 만화 슈퍼히어로 플래시는 자신의 속도를 '뢰머' 단위로 측정하기도 했다.[57] 래리 니븐의 1999년 소설 ''레인보우 마스''에서는 대체 역사 속 인물로 등장하여 화성 생명체를 관찰한 것으로 묘사된다. 2012년 출시된 게임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는 덴마크 소속의 신사 캐릭터로 등장한다. 2016년 12월 7일에는 구글 두들이 뢰머를 기념하는 로고를 선보였다.[5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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